만화/한국 만화

어느 휴대전화 매장의 만화 일러스트 광고를 보고 생각해본 것들.

mirugi 2007. 9. 26. 01:32

 

부천시의 모 휴대전화 매장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만화풍의 일러스트를 이용한 POP형 광고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일본에서는 생활 속에서 ‘만화’가 익숙하기 때문인지 만화풍의 일러스트를 POP광고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만화를 판매하는 서점에서는 더더욱 많은데, 국내 만화서점에서는 그런 POP가 드문 편이라서, 올해 3월 학산문화사 건물에 개장한 만화서점 「코믹커즐」의 노다 마사토 점장과 인터뷰를 했을 때에도 그 부분을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잠깐 인용해본다면….

 

mirugi  또 제가 일본의 만화 전문 매장들을 자주 방문하면서 느꼈던 것인데, 일본에서는 점원이 만든 POP가 매우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POP의 수도 적고, 또 있다고 해도 대부분이 출판사에서 만든 것을 놓고 있을 뿐인데요. 일본에서는 해당 매장의 담당자들이, 본인이 추천하는 작품의 POP를 직접 만드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중략)

아무래도 일본이 만화를 많이 만들고 많이 파는 나라이다 보니 판매하는 방식에 있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짜낸 것 같습니다. 모처럼 일본에서 20년 동안 경험을 가진 점장님이 한국에 오신 것이니까, 일본에서의 경험을 한국의 매장에 접목시켜 차별화된 운영을 해본다면 독자들에게도 신선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다   POP 만드는 건 아주 자신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만들어준 것밖에 갖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그걸 보러 온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기대해주십시오.

 

 


 

 

서점의 만화를 판매하는 코너에서 만화풍의 일러스트를 사용한 POP를 제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만화를 판매하는 서점원들도 만화의 팬인 경우가 많고, 그 중에는 만화를 그려본 사람들도 있을 테니 말이죠.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좋은 만화 작품을 추천하게 된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비단 서점만이 아니라 만화풍의 일러스트를 사용한 POP광고는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일본도 인터넷과 디지털카메라 문화가 발달하면서 그런 일러스트를 사용하면 바로 사진이 촬영되어 각종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통해 퍼지게 되는 바람에, 광고 효과보다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11월 일본의 인터넷에 퍼졌던 아래 링크의 편의점입니다. (일본에서도 상당히 소규모의 편의점 체인인 「저스트 스포트」란 곳의 ‘니시오치아이점’이라고 하더군요.)

http://web.archive.org/web/20041118013015/http://www.geocities.jp/oooo5656jp/

 

보시다시피 만화풍의 일러스트를 사용하여 점내를 꾸민 편의점인데, 이 편의점에 대한 사진이 일본의 대형 익명 커뮤니티 ‘니찬넬(2ch)’에 올라온 시점이 2004년 11월 13일이었습니다.

http://comic6.2ch.net/test/read.cgi/doujin/1100272729/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편의점 사진이 올라와있던 사이트에서 사진이 삭제되었습니다. (위 ‘니찬넬’ 링크를 따라가보면 그 사이트에 「소수 나쁜 사람들이 가게에다 대한 폐를 끼쳤습니다. 당면 페이지를 폐쇄합니다」라는 문장이 올라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일본의 「아키바 블로그」 등을 보면, 아키하바라의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매장에서는 만화 일러스트를 이용한 POP광고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위에서 소개한 한국의 「코믹커즐」도 그렇지만, 일본의 「애니메이트」「망가노모리」「토라노아나」 등의 만화 전문 서점이나 「쥰쿠도」와 같은 서점의 만화 코너 등에는 여전히 POP광고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어디까지나 만화에 특화된 특정 장소(아키하바라)나 만화 전문 매장에서이기 때문에, 특별시할 필요가 없으니까 인터넷 등에서 불필요하게 널리 퍼지지 않는 것일 뿐이죠. 그리고 널리 퍼지지 않는다면 당연히 ‘악플’이 달릴 일도 적게 되는 것이고요. 인터넷이 없던 과거에도 ‘유명세’라는 말이 있었듯이, 유명하게 되면 ‘악플’이 발생하는 것은 인터넷에서만의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화제를 돌려서, 일본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만화풍의 일러스트에 대해 아직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 물론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일부에서는 오타쿠를 소위 ‘오덕후’라고 부르면서 일본에서 한때 유행하던 오타쿠에 대한 마이너스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일본과 비교하면 만화 일러스트에 대해서 심각한 마이너스 이미지가 퍼져 있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물론, 일본 내에서 오타쿠에 대해 강력한 마이너스 이미지를 심었던 두 가지 사건, 즉 1989년의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도쿄·사이타마 연속유녀유괴살인사건)과 1995년 오움진리교가 일으켰던 「지하철사린독가스테러사건」이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습니다. 아무리 인터넷 상에서 ‘덕후, 덕후’하면서 오타쿠에 대한 마이너스 이미지를 붙이려고 하더라도, 저런 사건들이 일본 사회에 줬던 충격과 비교하면 거의 무의미한 것이니까요. 몇몇 분들은 한국에서도 오타쿠에 대한 마이너스 이미지가 ‘매우 강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는 듯 합니다만, 저로서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오타쿠, 만화 문화 등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을 뿐, 오타쿠나 만화 문화에 대하여 일본처럼 강력한 마이너스 이미지가 있을 수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만화 문화’에 대한 마이너스 이미지라면 한국에서도 과거 1960∼70년대부터 있어왔던 매스컴의 보도 탓에, 아직까지도 사회 전반에 꽤 남아 있다고 보입니다. (ex. 몇 년 전에 있었던 MBC 『느낌표』 사건 등)

 

하지만 ‘오타쿠’라고 하면…. 애시당초 〈한국에서 ‘오타쿠’란 단어를 아는 것은 오타쿠들 밖에 없다〉고 언급해온 제 말을 다시 인용할 필요도 없이, 도대체 한국에서 ‘오타쿠’란 말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나마 1990년대말 이후 매스컴에서 몇 번이나 사용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일부 젊은층에서만 사용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오타쿠’란 단어 자체가 일반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오타쿠의 마이너스 이미지’라고 해봤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죠.

 

 


 

 

어쨌거나 앞서 언급한 일본의 편의점 사진은, 인터넷에 올라오자마자 익명 게시판을 통해 많은 화제를 모았고 그 즉시 어느 동네에 위치한 어느 편의점이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긴 피해로 인해 업로드된 사진이 삭제되었죠. 하지만 이 글에 올린 저 사진 때문에 저 휴대전화 매장이 피해를 입는 일은, 아마도 생기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오타쿠’란 존재의 인지도 차이를 대변하고 있는 한 사례가 되겠습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례는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에, 별로 한국이 일본보다 성숙한 인터넷문화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만화 일러스트를 광고에 쓰는 정도의 가벼운 ‘오타쿠풍’의 매장이 피해를 입는 일은 아직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니까, 역시나 한국 사회에서 ‘오타쿠’의 마이너스 이미지는 그다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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