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기닷컴】 『아즈망가 대왕』으로 유명한 아즈마 키요히코가, 『아즈망가 대왕』을 그리기 전에 냈던 동인지입니다. 지금은 당연히 프리미엄 붙은 중고 외에는 구할 수가 없는 물건이죠.
원래 이걸 소개하려고 생각했던 이유는, 저번에 산왕님 블로그에서 봤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그래서 링크를 못했음) 우구이스 미츠루1가 그린 세일러문과 아야나미 레이 그림 때문입니다. 아즈마 키요히코가 그린 세일러문&세일러 마즈&세일러 비너스…도 나름대로 독특한 것 같아서요. ^^; 『동급생』도 그렇고.
▲아즈마 키요히코의 개인서클 ‘A-ZONE’의 동인지. 왼쪽이 『동급생 2』 동인지,
오른쪽이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동인지. 캐릭터 일러스트와 간단한 만화,
그리고 아즈마 키요히코가 직접 쓴 각 작품에 대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동인지의 일부 캐릭터들의 설정과, 만화 속에 사용된 개그 중 몇몇은 이후 『아즈망가 대왕』 등에도
그대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아즈망가 대왕』과 아즈마 키요히코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자료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을 듯. (2009.01.13/촬영:mirugi)
아즈마 키요히코는 1999년 『아즈망가 대왕』을 그려서 큰 인기를 얻기 전까지, 주로 동인지와 파이오니아LDC에서 출시된 『천지무용!』『신비의 세계 엘하자드』『배틀 애슬리테스 대운동회』 등의 LD와 CD에 일러스트와 만화를 그리는 일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그런 일러스트와 만화들은 전부 『아즈망가 대왕』 히트 후에 발행된 『아즈망가』『아즈망가 2』『아즈망가 리사이클』 등의 단행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책들은 국내에서는 발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아마 해당 작품의 출판사 뿐만이 아니라 해당 애니메이션의 제작사와 원작자들에게 일일히 판권 허락받기가 귀찮아서라도 일본 출판사 측에서 해외 출판권을 내주지 않을 테니 웬만해선 국내 발행이 어려울 듯 합니다. 방법은 국내 출판사가 일일히 직접 해당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판권 허락까지 받아내는 수밖에 없을 텐데, 국내 만화시장의 규모상 그 정도로 수고를 들여서 『아즈망가』『아즈망가 2』를 낼 출판사가 있을지 어떨지…. -_-)
제가 2004년부터 2∼3년 정도 일본 엔터브레인 출판사와 협력해서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와 동인작가 분들에게 앤솔로지나 잡지, 단행본 등에 일러스트 및 만화 원고를 의뢰받아오곤 했는데, 아즈마 키요히코도 그런 길을 걸은 셈이죠. 완전한 프로와 완전한 아마추어 사이의 중간적 존재라고 할까요. 일본에는 코믹마켓에서 동인지 활동을 하면서 그런 간단한 앤솔로지 원고나 각종 라이트노벨 및 게임의 일러스트, 여러 잡지에 사용되는 간단한 일러스트 컷 등을 수주받아 그리는 일도 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적 존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만화가로 데뷔하기 위해 바로 뛰어드는 사람도 물론 많지만, 특히 90년대 이후 일본에서 동인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물론 상업시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반대로 만화가 지망생의 폭증에 따라 상업지 데뷔는 점점 요원해지면서 처음부터 아예 “꼭 만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만화가 지망생은 눈에 띄게 격감했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일단 동인지나 웹에서 취미로 그림그리는 활동을 하면서,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면 좋고 아니면 그냥 취미로 계속 그림을 그리는… 그런 식의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또 앤솔로지나 잡지의 간단한 컷, 카드게임의 일러스트 (한 장 한 장 일러스트레이터가 따로 있는 형태의) 일 등은, 웬만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동인계와 웹에서 활동을 하면서 의외로 쉽게 생깁니다. 저도 한 3년 가까이 앤솔로지 관련 일을 수주받으면서 느낀 것인데, 그런 식의 일들은 정말 많더군요. 제가 참가했던 『라그나로크 온라인』 앤솔로지만 해도, 일본의 엔터브레인이란 출판사 한 군데에서만 지금까지 60권 넘게(…) 발행되었습니다. 60권 이상이면 거의 웬만한 초장기 연재작에 버금가는 분량인데요. 그게 겨우 3∼4년 정도의 기간 동안 엔터브레인이란 한 출판사의 『라그나로크 온라인』 한 장르에서만 나온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만큼 『라그나로크 온라인』이란 장르가 앤솔로지계(?)에서 인기가 높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엔터브레인 이외의 출판사에서 발행된 것까지 합치면,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앤솔로지는 아마 100권을 넘어 150권에 육박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세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앤솔로지라는 분야에서 책이 얼마나 많이 나오고, 또 그것을 사주는 독자층이 얼마나 많은지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이죠. 거기에다가 그 수많은 앤솔로지 출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수많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적 존재’의 덕분입니다.
(아, 당연하겠지만 이 말이 ‘앤솔로지에 반드시 프로는 참가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말을 써두지 않으면 간혹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있어서…. ^^; 저는 문장 속에 다른 의미를 감춰두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제 말은 그냥 제가 쓴 문장을 그대로 읽기만 하면 됩니다. 제 문장 속에서 제가 쓰지 않은 이야기를 혼자 추측해서 멋대로 만들어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런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적 존재’들 중에도 재능있는 사람은 물론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좋은 기회를 만나고 본인의 의지가 더해지면 아즈마 키요히코처럼 프로가 되어 좋은 작품을 내놓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 ‘프로 만화가는 (의외로 상당히) 힘들다’는 사실이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일본 사회가 국가적인 성장의 정점에 달하면서 그냥 단순히 ‘먹고 사는’ 것만이라면 전혀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갖게 되면서 (예를 들어 홈리스로 사는 것이 매우 힘들긴 해도, 최소한 홈리스가 되더라도 의외로 꽤 살아갈 수는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등) 점점 일본에서 ‘본격적인 프로가 되려는 의욕’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냥 자기 취미대로 웹에 그림을 올리면서 동인지나 내고, 그 동인지 수입만으로는 부족해도 동인지를 냄으로 해서 나름대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면 앤솔로지나 각종 일러스트 등의 수주가 들어오게 되니 다 합치면 그럭저럭 혼자서 살아갈만큼은 되는 것이죠. 특히나 독립하지 않고 소위 ‘패러사이트 싱글’ 혹은 ‘캥거루족’으로 부모에게 얹혀서 산다면 생활비 부담도 많이 줄어들고요.
경쟁사회에서 경쟁이 치열해짐으로 하여 아예 애초부터 경쟁을 포기하게 되는 이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사회의 변화에서 필연적인 방향인 듯 한데, 일본에서 말하는 소위 ‘격차사회’라는 것도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격차사회에 관련된 논의에는 격차가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 논하는 것이 아니라,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즉 애초에 경쟁에 참가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지니까 당연히 경쟁에 참여해서 승리한 사람과 처음부터 경쟁을 포기한 사람 사이에는 당연한 귀결로 큰 격차가 발생한다는…, 그런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거든요.
이와 관련되어서, 일본에서는 벌써 오카다 토시오씨의 ‘프티 크리’(‘프티 크리에이터’)라든가 타케쿠마 켄타로씨의 논의라든가 여러 가지 논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2001년에 아즈마 히로키씨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오타쿠가 본 일본사회』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도 결국 그러한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적 존재’의 등장을 예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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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일본에서는 니코니코동화와 픽시브를 통해, 과거에는 동인지와 개인 홈페이지 정도였던 크리에이터들의 표현 공간이 대폭 확대되었고, 하테나 다이어리 등 각종 블로그 서비스를 통해서는 평론·문필가들이 글을 쓸 수 있는 장소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또 소설에 있어서는 휴대전화(소위 ‘케이타이 소설’ 등)가 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죠.
한국에서는 웹툰, 웹만화, 온라인만화 등으로 불리우는 장르에서 이런 현상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웹툰 장르에서 다음과 네이버 등 포탈사이트 연재만이 아니라 해당 포탈의 투고 게시판, 그리고 디씨인사이드와 루리웹 등 커뮤니티 사이트의 아마추어 연재란, 나아가서 개인 블로그의 연재가 점점 나름대로의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이 그것입니다. 일본에서라면 과거엔 동인지와 개인 홈페이지, 최근에는 니코니코동화나 픽시브를 통해 벌어질 수 있는 현상이 한국에서는 커뮤니티 게시판과 블로그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까요.
다만 문제는, 일본에서도 니코니코동화와 픽시브는 딱히 개인의 수입에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동인지 시장이 강력하게 살아남아 있는 것이기도 하고, 앞서 언급한대로 앤솔로지나 일러스트 컷 등을 수주하는 인력이 계속해서 공급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런데 국내에서는 동인지 시장도 일본만큼 크다고 하기는 어렵고, 앤솔로지와 같은 상업 시장은 아예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니 일본의 ‘프티 크리에이터’들보다도 상대적으로 좀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에도 웹 활동하면서 얻은 유명세(?)로 동인지를 내는 크리에이터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또 한국에 앤솔로지는 없지만 대신 각종 온라인게임의 사이트에서 만화를 투고하다가 인기를 얻게 되면 해당 게임의 공식 연재 작가로 발탁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런 것이 일본의 앤솔로지를 어느 정도 대체하는 부분도 있겠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양이 일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꽤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출판계나 만화계가 어떻고 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특히 동인시장의 규모 문제는 더더욱이나 어느 특정 개인이나 업체의 문제라고 하기 어렵죠. (물론 그런 문제도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은 또 만화와 만화 주변문화(동인지나 일러스트 등)에 대한 독자들의 수가 일본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듯 합니다. -_- 그것은 비단 인구의 문제만은 아닌데…. 그 이야기까지 하려면 너무 길어지니까 이 글은 이 정도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2009 [mirugi.com] http://mirugi.com/
- 참고로 우구이스 미츠루는 만화가 TONO의 동생으로, TONO와 함께 동인서클 ‘우구이스 자매’로 활동하고 있는 만화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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