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서양 애니메이션

『스머프』를 통해 생각해본 ‘한류’의 근원.

mirugi 2008. 4. 10. 23:08

【미르기닷컴】 몇 달 전, 『스머프(Les Schtroumpfs)』(영어 제목 『The Smurfs』/국내 제목 『개구쟁이 스머프』)의 50주년 기사가 국내 언론을 장식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벨기에 작가 페요(Peyo) 원작의 애니메이션 『스머프』가 캐릭터 탄생 5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애니메이션판은 1981년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한나 바버라 프로덕션이 제작하여 세계 30여개국에서 방영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에서는 1983년 TV 방영 이후 아동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높은 인지도를 가진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자리잡았죠.

 

◆관련기사:탄생 50주년 맞은 스머프 (2008.01.15/연합뉴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80115091515543&cp=yonhap

◆관련기사:‘스머프 50주년’ 기념 행사 다양 (2008.01.15/YTN동영상)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080115060305140&cp=ytni

◆관련기사:‘스머프’ 50세 (2008.01.16/중앙일보)

http://media.daum.net/entertain/movie/view.html?cateid=1034&newsid=20080116053711918&cp=joins

 

스머프 캐릭터는 벨기에의 만화가 ‘페요’(피에르 컬리포드/1928년∼1992년)가 1958년 잡지 『르 저널 드 스피르』에 연재했던 방드데시네(BD; 베데) 『조안과 피를루이』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방드데시네’란 것은 프랑스에서 말하는 ‘만화’인데, 벨기에 역시 프랑스어권인 관계로 방드데시네가 많이 나왔죠. 주로 ‘BD(베데)’라고 약칭됩니다.

 

▲2003년 제 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 전시된

「스머프라는 상상의 나라」라는 전시의 전시물들. (2003.08.13/촬영:선정우)

 

 


 

 

국내에서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만, 사실 한국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다양한 대중 문화를 받아들인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군 기지의 건설 등으로 1960∼70년대부터 미국의 영화, 팝 음악, 드라마 등이 인기를 끌었고, 유럽의 원작을 바탕으로 미국이 애니메이션화한 『스머프』를 비롯하여 『톰과 제리』, 『딱다구리』, 『뽀빠이』 등 미국 애니메이션이 줄을 이어 TV 방영되었죠. 물론 일본에서도 이와 같은 미국 애니메이션은 방영되었습니다만, 한국처럼 재방에 재방을 거듭하여 세대를 넘나들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은 자국 애니메이션이 많고 시청률도 높으니, 굳이 외국 애니메이션을 연속해서 틀 이유가 없었던 것이겠죠.

 

또한, 한국에는 미국 문화만 들어온 것이 아니라 타국 문화도 널리 퍼졌습니다. 일본의 TV 애니메이션은 1960년대 말 이후 아이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았고, 중국의 무협소설과 이소룡, 성룡의 무술영화도 수입되었죠. 80년대에는 홍콩영화, 90년대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 소설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런 ‘문화적 다양성’이 2000년대 현재에 있어서 ‘한류’의 세계 진출과 과연 무관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외일지는 모르겠으나,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대국이라는 이웃 일본만 보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중에 인지도가 크게 높다고 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스머프』죠.

 

일본에서 『스머프』는 애니메이션으로서의 대중적 인지도가 한국만큼 높지 않습니다. 일본에서의 『스머프』는 애니메이션보다도 한 유업회사(유키지루시유업)의 마스코트 캐릭터로 더 알려져 있을 정도죠. 물론 일본에서도 한국보다 2년 늦은 1985년에 『숲의 스머프』란 제목으로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긴 했습니다만, 우선 한국보다 2년 늦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인지도가 높을 것이라고는 역시 생각되지 않죠. 실제로도 일본에서 『스머프』는 캐릭터 상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인기 캐릭터도 아니고 말이죠.

(국내에서는 프랑스의 만화로 알려져 있는 『땡땡』 시리즈도 일본에서는 캐릭터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그것도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성인들까지도 잘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바로 『스머프』입니다만, 일본에서는 일반인은 물론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더더욱 인지도가 낮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 2003년 6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 당시 일본 TBS 방송국에서 방영되었던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서의 에피소드를 들 수 있겠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초난강’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일본의 인기 가수 쿠사나기 츠요시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신의 그룹인 SMAP을 아느냐고 질문했는데요. SMAP은 일본어 발음으로 “스맙푸”가 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 발음을 듣고 “스맙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 말인가요”라고 답했죠.

 

이때 질문을 던진 쿠사나기 츠요시는 물론 그 방송을 보던 일본인들의 대부분은 단순히 한국의 대통령이 SMAP이란 그룹을 잘 몰랐던 것 뿐이라고 넘겼을 겁니다. 덕분에 일본에서는 이 건에 대해 매스컴은 물론, 만화·애니메이션 업계나 각종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제가 이후 일본의 한 잡지에서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SMAP을 『스머프』와 혼동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자, 그 원고를 읽은 일본 측 편집부에서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며 깜짝 놀랐죠.

(아니, 애시당초 그 편집부에서는 『스머프』란 작품을 잘 모르기도 했고요. 물론 일반적인 일본인이라면 『스머프』를 모르는 것이 이상할 이유는 없습니다.)

 

 

즉 한국에서는 『스머프』란 서구 애니메이션이 60대 가까운 나이의 대통령까지도 알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를 갖고 있었는데, 애니메이션의 나라라는 일본에서는 TBS 방송의 프로그램을 본 사람 중에 저 에피소드에서 애니메이션 『스머프』를 연상한 사람이 거의 전혀 없었을 정도로 양국에서의 인지도와 비중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본은 워낙 자국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타국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생각만큼 높지 못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겠죠.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한국에서는 타국의 대중문화에 쉽게 친숙해질 수 있었던 배경이 있습니다. 이것이 불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관점을 달리해본다면 충분히 장점이 될 수 있겠죠.

 

한국인은 미국의 영화나 음악에도, 일본의 만화에도, 중국의 무협소설에도 익숙합니다. 갈수록 세계화가 진행되고 문화의 ‘크로스오버’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이것은 분명히 유리한 부분입니다. 지금은 일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국에서 제작한 영화 『올드 보이』에, 미국인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절찬을 하는 시대입니다. 애초에 『스머프』 역시도 벨기에 만화작가의 원작을 미국에서 애니메이션화하여 전세계에 퍼뜨렸던 작품이죠. 문화는 국경을 넘으며 다양성을 갖추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문화가 특별히 해외를 크게 의식하면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국내에서 세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저는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스머프』 이야기에서 너무 멀어지니까 나중에 다른 글로 다시 써보죠. 아무튼 실제로 몇 년간 외국(현재까지는 일본에서만입니다만)에서 한국의 만화와 여타 문화를 소개해본 경험을 갖고 있는 몸으로써, 외국의 사정을 살펴볼 때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2008 [mirugi.com] http://miru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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