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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코멘트] 소녀문화연구회 「소녀 문화의 친구」 2007년 제2호 수록.

mirugi 2007. 12. 16. 21:51

[미르기닷컴] 일본의 「소녀」문화연구회란 연구 모임에서 매년 발행하는 연보(年報) 「『소녀』 문화의 친구」 2007년 제2호에 코멘트가 수록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일본의 만화연구가 야마나카 치에씨가 쓰신 원고에 제 코멘트 및 제가 블로그를 통해서 알아낸 정보가 인용되었습니다. 야마나카 치에씨와는 7, 8년 정도 알고 지낸 사이인데, 한국만화를 주로 연구하는 분이라서 제가 자료나 정보를 자주 제공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2002년에 냈던 무크지 『-vision: 한국만화를 찾는 일본인들』란 책에도 필자로 기용한 바 있죠.

 

그 야마나카 치에씨가 이 「소녀」문화연구회란 곳에서 활동하는가 본데, 이번 호 특집이 《여자아이 2인조 특집》이라고 해서 제게 한국에서 ‘여자아이 2인조’물이 있는지 질문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 결과를 「특별 레포트▷한국에서 ‘여자아이 2인조’는 활약하고 있는가?─한국 만화칼럼니스트 선정우씨에게 묻다」라는 기사로 만들었더군요.

 

 

 


 

 

이 질문에 대해서 저는, 제 답변과 함께 블로그를 통해 몇몇 분들께 설문을 해서 얻은 결과를 정리하여 같이 보내주었습니다. 몇몇 한국 작품의 사례를 설명해줬지만, 결론적으로는 “사실상 한국에는 여자아이 2인조물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없다시피 하다”는 답변이었습니다만….

 

위 블로그 설문 결과에서도 여러분이 ‘여자아이 2인조’를 굳이 찾아내고자 노력을 해주셨는데, 사실 이미 ‘굳이’ 찾아야 하는 시점에서 그런 작품이 없다시피 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_- 일본에서 예를 들자면 『더티 페어』로부터 『두 사람은 프리큐어』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지만, 한국에는 그런 식의 ‘캐릭터 중심의 작품 구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는 것 자체도 연구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야마나카씨도 칼럼 내에서 “어째서 ‘없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여자아이 2인조라는 관계성을 그리는 작품이 ‘어째서 존재하는가’도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고 밝힙니다.

 

 

  


 

 

또한 야마나카씨는 “이와 같은 한일간 표현 차이를 단순히 사회·문화적인 배경으로 환원하여 본질화시키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일본에 있어서 무엇이 ‘(한국만화를)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있는지 만화 표현의 차원에서 상세히 고찰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고도 말합니다.

 

이 지적은 저도 평소 생각하던 바와 일치하는데, 일본에서 한국만화를 소개하는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일부 일본인들, 특히 연구자가 아닌 일반 대중의 경우에는 적지 않은 수가 외국의 문화가 일본문화랑 다른 이유를 그저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느낍니다. 사실 한국의 대중도 그 점에 있어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그런 점을 보다 잘 인식할 수 있었던 것도 ‘외국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작업’을 하다보니 거꾸로 저 자신도 한국문화를 재인식할 수 있는 경험이 되었죠.

 

 

어쨌든 자국의 문화가 외국에 대해 가지는 차이점을 그냥 ‘원래 다르니까 다른 거지’라는 식으로 내팽개쳐버리는 태도는 학자로서의 자세를 포기하는 것일 테고, 그 원인에 대한 연구나 분석을 통해 보이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양국 만화를 살펴보며 그런 점에 대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 회지에는 일본에 있어서 ‘여자아이 2인조’물에 관한 분석이 여럿 실려 있는데, 우선 ‘여자아이 2인조’물에 해당하는 작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표를 만들어뒀더군요.

 

 

연구할 테마를 정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사례’를 찾아 정리하고자 하는 연구 자세가 매우 마음에 듭니다. 한국에서 적지 않은 필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자 할 때 그저 한두 사례만 있어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주장을 나열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그나마 한두 가지라도 사례를 들어주기나 하면 다행 -_-), 이처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케이스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평론’보다 ‘조사’나 ‘분석’을 더 선호하는 것이고요.)

 

국내에서도 이런 식의 연구가 좀 더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저 자신, 그런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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