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대학의 만화·애니메이션 학과:그 빛과 그림자.

mirugi 2007. 8. 15. 04:28

[미르기닷컴] 최근 일본에서는 ‘오타쿠산업’, 즉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산업에 정부 차원에서 꽤나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1995년부터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을 시작된 한국보다 조금 늦었다고는 하나(일본 정부의 〈문화청미디어예술제〉는 1997년 개시), 세계 최대라고 자칭하는 ‘오타쿠산업’의 대국이니만큼 그 규모는 이미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일본의 오타쿠산업 관련 대학 학과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얼마 전 구매한 일본의 잡지 「사이조」 2007년 8월호에 실린 《오타쿠 업계의 어둠》이란 특집을 보고, 평소 생각해왔던 바를 열거해보도록 하죠.

 

 


 

 

 

그동안 저는 한국에 있으면서, 만화에 관심있는 여러 사람들이 한국의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대학 학과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때문에 저 자신 역시 주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의 비판 중에 ‘한국이 다 그렇지, 뭐’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는 듯 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참고로 대학에 만화와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가 설치된 것 역시,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공주대학교가 만화학과(현재 국립공주대학교 만화예술학부)를 1990년에 처음 개설한 이후 17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교토세이카대학이 2000년 예술학부 내에 만화학과를 개설한 것이 전문학교가 아닌 보통의 대학에서 만화학과를 개설한 첫 사례라고 일컬어집니다. (교토세이카대학은 이후 2006년 만화학부를 개설하고 내부에 만화학과, 애니메이션학과, 만화프로듀스학과를 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외에도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에 개설된 ‘콘텐츠창조과학 산학연계교육 프로그램’(2004년)을 비롯하여, 도쿄지역의 도쿄공예대학(2003년 애니메이션학과, 2007년 만화학과 개설), 디지털 헐리우드대학(2004년 대학원대학, 2005년 디지털커뮤니케이션 학부 개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칸사이지역의 대학으로는 교토세이카대학을 비롯하여 리츠메이칸대학(2007년 4월 영상학부), 오오사카예술대학(2005년 예술학부 캐릭터조형학과), 타카라즈카조형예술대학(2007년 도쿄 신주쿠 캠퍼스 미디어콘텐츠학부) 등이 ‘오타쿠산업’ 관련 학과를 연이어 개설했죠.

 

 

보다시피 상당수의 학과가 2004∼2007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3곳은 2007년 올해에야 개설되었을 정도고요. 2000년에 개설된 교토세이카대학을 제외하면 당연히 아직 졸업생도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문에 아직까지는 크게 노출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미 일본의 대학에서도 한국의 관련 학과들이 이미 겪은 것과 같은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죠.

 

 


 

 

어떤 문제인가 하면, 우선 「사이조」의 기사 제목과 거기 붙어있는 문구를 보십시오. 아래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붐 편승으로 증가하는 오타쿠학부/그 속셈과 졸업 후의 슬픈 말로〉

:학생들은 강사들의 편리한 “어시스턴트”?

:“아니메, 만화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일본의 문화산업으로!”라는 호령 아래, ‘오타쿠 엘리트’ 육성에 힘을 쏟는 정부와 최고학부.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거기엔 안이한 대학의 속셈과 졸업생들의 안타까운 취직 문제가 노정되어 있었다.

 

 

기사 제목에서부터 모든 상황이 일목요연합니다. 「사이조」 기사 내용에는 오타쿠학부가 증가하는 일본의 상황에 관해 이런 증언이 나와 있습니다.

 

2003년 정부는 국내의 콘텐츠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내각관방의 조직으로 「지적재산전략본부」를 설치. 동 본부를 중심으로 법 개정에 의한 규제 완화 등이 진행되어, 지원체제는 확실히 강화되고 있다.

“서브컬처를 국책으로 지원하는 데에 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콘텐츠업계에서 활약하는 인재육성기관의 증가를 확실히 이끌고 있습니다”라고, 콘텐츠산업에 정통한 경영컨설턴트는 말한다.

 

한국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이 대학에 콘텐츠 관련학과(만화·애니메이션 학과) 개설을 유행시켰듯이, 일본에서도 일본 정부의 비슷한 지원책을 등에 업고 각 대학들이 앞다투어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대학의 움직임이 고등학교로도 이어져, 오오사카시에 있는 테즈카야마학원고교에서는 2008년 4월 ‘일러스트·만화·아니메 전공’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 역시도 대학에 이어 고등학교가 비슷한 전개를 보였었으니,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죠. 이와 같은 양국의 비슷한 움직임은, 결국 일본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문제점을 낳게 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사이조」 기사를 보면, 관련학과 중에서 유일하게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는(2000년 개설) 교토세이카대학 만화학과 졸업생의 증언이 나와 있습니다.

 

“당연히 주변의 모두가 만화가를 지망하는 학생 뿐이었으니,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또 강사를 맡고 계신 프로 만화가나 편집자 분들에게 자기 작품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매우 좋은 공부가 됐습니다. 3년차에는 1주일 정도 프로 만화가의 사무소에서 인턴도 체험했고요. 만화가를 목표로 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유익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또 정기적으로 코단샤 등 대형 출판사의 만화 편집자가 대학에 스카웃하러 오기도 합니다. 그쪽을 통해 졸업 후에 데뷔한 학생도 있다는 것 같고요. 하지만 만화의 세계에선 프로로서 살아남는 사람은 극히 드문, 한 줌밖에 안되는 수자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졸업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출판사에 투고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머지는 교수님의 소개로 만화가의 어시스턴트가 되거나, 만화 편집자로 출판사에 취직하는 사람도 있었죠. 만화의 세계를 포기하고 일반기업에 취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화학과라는 특수한 학과이기 때문에, ‘면접관에게 편견의 시선을 받는 경우도 많아 취직 활동에서는 고전했다’는 말을 하더군요.”

 

또, 다른 지방대학의 애니메이션계 학부 졸업생의 증언은 이와 같습니다.

 

“제가 다닌 대학에서는 인턴제도도 없어서 실무적인 경험을 쌓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에서 작화맨으로 일하고 있는데, 대졸자는 저 뿐입니다. 대부분은 전문학교 출신이죠. 그들이 전문학교에서 배운 것과 제가 배운 것에 큰 차이는 없더군요. 일부러 4년간이나 다닐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런 증언은 국내 대학 관계자에게 들었던 국내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 모 대학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은 현직 애니메이터인 친구들에게 항상 “(네가) 매년 백수를 양산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셨죠. 만화학과라고 별 다를 바는 없어서, 학생은 매년 정원만큼 양산되는데 그 중에 실제 만화가로 데뷔하는 것은 일부 뿐이고 또 그 안에서 ‘인기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한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인 것이,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해당 산업에서 종사할 수 있는 인력의 수에는 한도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일본을 ‘만화의 왕국’으로 부르며 특히 만화가 분들은 일본이야말로 꿈의 무대인 양 과장된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실제로 일본의 만화가, 동인작가, 만화가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와 같은 평가와는 전혀 동떨어진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과대 평가와 과소 평가 둘 중의 한쪽인 것이 아니라 양쪽의 가운데쯤이 현실이겠지만요.

 

 

어쨌거나 일본 만화계도, 시장의 규모는 한국보다 훨씬 크지만 그에 따라 만화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수도 한국보다 훨씬 많아, 결과적으로 한국보다도 훨씬 더 경쟁이 심한 것이 현실입니다. 예전에 일본 쪽에 진출해서 조금씩 일을 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분은 일본의 크리에이터들과도 친분을 쌓아 많은 말을 나누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편하게 데뷔하는 한국인 크리에이터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일본인 지망생들도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더군요.

 

그야 그럴 것이, 단순히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바로 데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만 하는 일본의 신인들과는 달리, 한국의 작가들은 이미 한국에서 데뷔해서 자기 작품을 발표한 상태에서 그 작품을 보고 일본 편집자들에게 평가를 받아 진출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본의 완전한 신인들보다는 유리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신인들은 애초에 ‘편집자에게 제대로 된 자기 작품을 보여주는’ 것조차도 쉽지 않거든요. 만화가 지망생이라면 아시겠습니다만, 투고작품을 장편으로, 그나마도 초반부 조금만 만들고 설정만 대충 써서 붙인 것으로는 편집자의 눈에 들기가 힘듭니다. 투고작품은 거의가 중·단편이어야, 투고작품을 봐주는 편집자가 일단 ‘읽기’라도 해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단편은 약하지만 장편은 강한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중·단편 중심의 투고 방식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투고작품에만 신경을 쓰고 있을 수만은 없는 출판사 측의 사정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식으로 시스템이 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런 제한된 상황 속에서 데뷔를 기다려야 하는 일본인 지망생으로서는 비좁은 일본 만화계의 자리를 조금씩 빼앗아가는 한국의 경쟁자들이 유쾌할 리가 없을 겁니다.

 

 

아무튼 이야기를 다시 돌려서, 그만큼이나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분야에서의 경쟁은 격렬한데, 대학이 학과를 설립하면서 더더욱이나 많은 학생들을 매년 배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만화학과’, ‘애니메이션학과’를 나온 것이니, 편견이 많다는 일반기업 입사보다는 당연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만화가나 애니메이터가 되길 원할 겁니다. 하지만 그 현실은 기사에 실린 위 증언들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이야기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한국의 현실과도 비교해볼 수 있는 부분이 「사이조」 기사에는 계속 이어집니다. 해당 부분을 다시금 인용해보겠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 속에서, 오타쿠계 학부의 신설 러시에 의해 최대의 혜택을 얻고 있는 것은 “학생들이 아니라 교직원들”(도쿄대학 관계자)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의 유명대학에서는 이름난 강사들이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만, 인기없는 작가들의 피난처처럼 되어 있는 대학도 있습니다. 또한, 강사 중에는 우수한 학생을 붙잡아다가 자기 본업을 돕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동 관계자)

 

이런 증언만 본다면, 의외로 일본의 상황이 오히려 더 나빠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학부 개설 붐이 일어난지 2∼3년 정도만에 벌써부터 저런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콘텐츠 학과 개설 붐이 10년 이상 이어져온 한국의 현 상황은, 그래도 그럭저럭 나름대로는 나쁘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이조」 기사에서는 일본의 콘텐츠 학과 개설 붐에 대해 이런 비판도 이어집니다.

 

문부과학성에서 산출한 결과에 따르면, 금년도부터 ‘소자화’의 영향으로 입학 희망자수가 대학의 총 정원수를 밑돌아, 희망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어딘가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전원 입학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그때문에 각 대학들은 현재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학생을 모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략) 가혹한 생존 경쟁에 내던져진 대학들은, 학생 확보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편안하게 앉아만 있는 것에 익숙해진 직원들만 데리고 있는 대학이란 조직에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니 결국 ‘아무튼지, 유행할 것 같은 것은 해보자’는 생각만으로, 신설 학과를 개설하는 대학이 많게 되는 거죠. 오타쿠계 학부의 신설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산업이 주목받으니 그저 붐에 편승한 것 뿐. 정부에서도 국책으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지원하기 시작한만큼, 인가도 쉽게 나오고 말이죠. 그런 학과들 중 많은 수가 수 년후에 정원이 모자라져서 어느 샌가 소멸하게 되지 않을까요?” (유명 사립대학 직원)

 

정말로 이 예측이 맞는다고 한다면, 최대 17년이나 이어져온 한국 대학들의 만화·애니메이션 학과들은 ‘일본보다는 나았다’(…)고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거죠. …물론 그 학과들 자체가 잘 되어야지, 일본과의 비교에서 조금 더 우위에 섰다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일본 대학들도 그 내면에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한국에 잘 알려지지 못한 것 뿐이지 한국과는 다른 여러 가지 장단점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아직까지는 장점이 더 많긴 하겠습니다만…. 적어도 전반적으로 학문적인 연구를 하는 분위기라는 점은 부러우니 말이죠.

 

특히 저도 만화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지난 2007년 6월 교토에서 열린 일본만화학회 심포지엄에 참가해본 감상으로도 일본의 그같은 아카데믹한 연구의 진지하고도 열성적인 모습은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당장 지금도, 제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일본의 모 대학 소속의 만화연구자가 방한해서 10일 이상 한국의 만화계 인사들을 인터뷰하고 계시는데 (부천만화축제까지 보고 가시겠다더군요), 이 분은 벌써 10년 이상 한국만화를 연구하는 분으로서 이미 축적한 연구 결과가 한국의 웬만한 연구자들의 성과 못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보자면 한국만화 연구라는 것은 마이너 분야인데도 그런 축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가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그에 대해서는, 저를 비롯한 한국 연구자들의 부족함이 질타되어야 하겠습니다만…. (당장 저부터가 벌써 4∼5년째 신간을 내고 있지 못하고 말이죠. 물론 신간 단행본을 내는 것만이 연구 방법의 전부는 아니지만.) 우선은 국내에 잘 유통되지 않는 상세한 일본 정보를, 판단 재료로서 이런저런 분야에 관해 블로그에 적어보는 것도 제가 할 일이겠습니다. 지금껏 블로그를 그와 같은 정보 유통의 장으로도 계속 활용해왔는데, 앞으로도 관심 있는 분들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2007 [mirugi.com] http://miru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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