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한국 만화

한국만화 보기:「만화왕국」에 연재된 『짝꿍』(김진).

mirugi 2009. 4. 14. 12:16

【미르기닷컴】 이번에는 「만화왕국」에 연재되었던 김진 작가의 만화 『짝꿍』입니다. 「만화왕국」은 다른 아동만화 잡지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소년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소녀 취향의 작품도 같이 실을 수 있던 매체였죠. 그나마 비교적 「만화왕국」은 소년 취향이 강했는데, 그 와중에 『짝꿍』은 상대적으로 순정만화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인 김진씨가 여성이었기도 했고요.

 

아직 만화가의 매체 노출이 드물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대본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진 작가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독자들이 알기 힘들었습니다. 김진 작가가 잡지로 진출하면서 그런 이야기가 더 많았는데, ‘김진’이란 필명이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이었다는 점이 컸겠죠. 나중에 인터뷰 기사 등이 실리면서 그런 설왕설래도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만….

 

 

▲월간 아동만화 잡지 「만화왕국」에 연재되었던 『짝꿍』(김진) 연재 제 1회.

당시까지 아동만화만 보던 나에게는 이 작품의 화면 구성과 컷 배분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김진 작가의 화려한 그림체도 특히 큰 역할을 했다. (2009.04.01/촬영:mirugi)

(※이 사진은 mirugi가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촬영한 것으로,

이 원고의 저작권은 만화가 김진 선생님께 있습니다.)

 

 

아무튼, 이 『짝꿍』이란 만화는 저의 인생을 전환시켰던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사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만화 매니아였다고 하기는 힘들었거든요. 매니아급의 만화 독자라면 누구나가 부모님이 만화책을 버렸다는 일화가 있는 듯 한데, 저는 오히려 부모님이 만화책을 버린 기억은 거의 없는데 이사를 기회로 스스로 그때까지 모았던 만화잡지를 버리기도 했을 만큼 일반인(?) 쪽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과 같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바로 순정만화였는데, 제가 최초로 샀던 순정만화 잡지인 「르네상스」 1989년 1월호 (창간 제 3호)를 사게 되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김진 작가에 작품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거든요. (『시벨』이라는 단편작품.)

 

그리고 김진 작가 작품에 이끌려서 새로 창간된 잡지를 사게 되었던 이유는, 바로 「만화왕국」에 연재되던 『짝꿍』을 너무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월간 아동만화 잡지 「만화왕국」에 연재되었던 『짝꿍』(김진) 연재 제 2회.

오른쪽이 연재 제 2회의 시작 페이지인데, 순정만화에서는 일반적이었을 저런 ‘예쁜’ 일러스트를

1988년 당시까지 나는 거의 접해본 적이 없었다. 1980년대 초반 『캔디 캔디』의 ‘예쁜’ 일러스트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세련된 이 ‘예쁜’ 순정만화의 일러스트에 반해버렸던 것.

(2009.04.01/촬영:mirugi)

(※이 사진은 mirugi가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촬영한 것으로,

이 원고의 저작권은 만화가 김진 선생님께 있습니다.)

 

▲월간 아동만화 잡지 「만화왕국」에 연재되었던 『짝꿍』(김진) 연재 제 2회∼8회, 10회, 12회까지.

특히 연재 제 10회와 12회의 시작 페이지 배경에 글자가 가득 적혀 있는 것 또한,

당시의 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글자’가 일러스트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20년전의 나에겐 놀랄 만한 일이었던 셈.

그때부터 만화에 대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9.04.01/촬영:mirugi)

(※이 사진은 mirugi가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촬영한 것으로,

이 원고의 저작권은 만화가 김진 선생님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1986년 이사를 기점으로 그때까지 모았던 만화잡지를 전부 버렸습니다. 양도 많고 옮기기도 귀찮았기 때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만화를 좋아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평범한 어린이로서 만화를 좋아했던 것 뿐이었던 저는 특별한 생각없이 누구나 그렇듯 이사하면서 짐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잡지책들을 버렸던 것이죠.

 

일단 버리고 나니, 이사한 후에도 새로 사기가 좀 뭣해서 1986년을 기점으로 한동안 만화잡지를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당시 유행하던 애니메이션 대백과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그리고 1984년에 처음 본 이래 완전히 빠져버렸던 김용의 무협소설(『영웅문』『녹정기』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또 라디오도 많이 들으면서 가요나 팝송을 녹음하기도 했고요.

 

 

그런 와중에, 집근처 문방구에서 「만화왕국」이란 잡지가 새로 창간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988년 8월 15일호 창간)

 

간만에 창간된 잡지라 한 권 두 권씩 사보게 되었고, 그 와중에 바로 이 『짝꿍』이란 만화를 접했던 것이죠.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작품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까지 저는 잡지로만 만화를 보고, 클로버문고나 요요코믹스 등 서점과 문방구에서만 만화를 샀기 때문에 대본소, 만화방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없습니다.;;)

 

이 점도 제가 만화 매니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 정말로 저는 대본소, 만화방, 대여점 등 만화 독자들의 대다수가 이용하는 만화 독서의 중요한 창구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대본소에 두 번 정도, 대여점에 한 번 정도 가본 적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해당 점포에서 오래 된 만화책을 판매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던 것이지 책을 빌리거나 보러 간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죠.

 

(오히려 일본의 만화 렌탈점에는 가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만, 이 역시도 일본은 PC방이 만화방과 결합된 점포 형태가 많기 때문에 PC방 이용을 위해서 갔던 것이지 거기에서 만화를 본 적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굳이 만화를 안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저는 만화를 사보는 것이 기본이다 보니 빌려보더라도 결국 마음에 들면 나중에 사게 될 테니까 왠지 빌려보는 돈이 아깝게 느껴져서 말이죠.;; 결국 살 책인데 유료로 빌려보게 되면, 그 빌려보는 데에 쓴 돈은 추가로 부담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대본소를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저로서는, 순정만화라고는 오직 「보물섬」을 비롯한 아동만화 잡지에 연재된 작품들(차성진, 김동화, 이진주, 황미나 작가 등의 작품)과 일부 서점용으로 출간되었던 단행본 만화(김동화 『아카시아』『내 이름은 신디』, 차성진 『칼레아나』 등)밖에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물론 차성진씨의 『은반 위의 요정』이나 이진주씨의 『달려라 하니』, 김동화씨의 『요정 핑크』 등 좋아하는 작품은 있었지만 이것들은 기본적으로 아동만화 잡지 연재작이라 아무래도 저연령층 대상이었고, 황미나씨의 『다섯 개의 검은 봉인』『녹색의 기사』 등도 있었지만 당시부터 황미나씨의 작품은 어느 정도 남성 독자들도 고려한 스토리라인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본소 시절의 황미나 작가의 작품들에는 전형적인 순정만화 장르의 작품들도 있었지만, 다시 말하건대 저는 1988년까지는 단 한 번도 대본소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대본소 만화를 전혀 모르던 저에게, 『짝꿍』이란 작품은 어느 정도 아동 취향도 섞여 있었지만 그 내용이 그때까지 접했던 순정만화와도 조금 달랐기 때문에 상당히 색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또 무엇보다도 김진씨의 그림체가 그때까지 저로서는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세련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이 만화는 뭘까?

 

『짝꿍』이 끝나고 『푸른 포에닉스』라는 SF물이 시작되었는데, 이 작품 역시 그때까지 여러 번 보아왔던 SF만화 장르였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다른 작품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제가 그때까지 크게 염두에 둔 적이 없는 ‘순정만화’라는 존재였다는 것을 바로 1989년 1월에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르네상스」 1989년 1월호를 통해 알게 되었죠.

 

 


 

 

뒷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서점에서 동생이 우연히 뒤져보던 「르네상스」에서 김진이란 이름을 발견하고 “오빠, 여기 김진 만화 있는데?”라고 말했던 것이 그 후의 내 인생을 결정한 셈인데, 저는 즉시 「르네상스」 1989년 1월호를 샀고, 김진 작가의 『시벨』을 비롯하여 신일숙 『1999년생』, 강경옥 『라비헴폴리스』, 김혜린 『테르미도르』, 황미나 『엘 세뇨르』, 한승원 『사랑연습』, 김동화 『바람의 詩』, 원수연 『야회복』, 진아 『조그맣고 조그맣고 조그마한 사랑이야기』 등이 실려 있던 그 잡지에 푹 빠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동네 서점을 다 뒤져서 아직 반품되지 않고 있던 지난달 호(1988년 12월호)를 구매했고,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르네상스」를 정기구독하면서 출판사에 연락하여 1988년 11월 창간호도 사모았죠. 그리고는 1994년 휴간될 때까지 쭉 「르네상스」를 구독했습니다.

 

 

물론 내가 그때 서점에서 「르네상스」 1989년 1월호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언젠가는 만화에 빠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만화를 지금처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분명히 「르네상스」 1989년 1월호였고, 그 잡지를 사게 된 계기는 거기에 김진 작가의 작품이 실려 있기 때문이었고, 또 김진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된 것은 『짝꿍』이란 작품이 시초였다는 점은 사실이란 것이죠.

 

그 후에 저는, 「르네상스」 연재 작가들이 대부분 대본소에서 데뷔했다는 사실을 알고 대본소 발표작들을 보기 위해 동생을 시켜서(웃음) 그 작가들의 대본소의 만화들도 상당수 빌려보았습니다. 동네에는 대본소가 없었고, 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던 동생의 학교 근처 대본소에는 여학교 근처라 그런지 순정만화가 상당히 많이 있었던 듯 하거든요. 동생을 시켜서 빌려보긴 했으나, 아무튼 앞서 말했듯이 저 자신은 대본소에 직접 가본 경험이 없습니다. ^^;;

 

그리고 나중에는 동대문 쪽에 만화 총판이 있고, 거기에 가면 대본소 만화들도 살 수 있다는 말에 버스 타고 나가서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딸들』 대본소판 전권을 구매하는 등 대본소판도 사모으기 시작했죠. 혹은 PC통신을 시작한 이후 동호회 장터 등을 통해 중고로 대본소 만화를 사기도 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대본소 만화들은 그렇게 모은 것들이죠….

 

 


 

 

어쨌든 『짝꿍』은 저에게 그런 추억이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본래 감상이나 리뷰, 평론 등 작품을 보고 느낌을 적는 행위에는 익숙하지 않은데 (아마도 쑥스러운 느낌 때문인 듯…), 그 작품을 접한 추억을 에세이 형식으로 적는 것에는 주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래 『다이아몬드 하니』 글도 그렇고, 작품 자체보다는 그 작품에 담긴 나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편이 더 편하네요. 앞으로 올릴 글도 대충 그런 쪽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2009 [mirugi.com] http://miru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