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일본 화장품:『비하다 일족』.

mirugi 2008. 10. 28. 12:30

【미르기닷컴】 얼마 전, 일본에서 TV애니메이션이 제작 예정이라고 발표된 『비하다 일족』이란 화장품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미 제1화가 2008년 10월 6일에 방영되었고, 매주 월요일 심야 1시 30분∼2시라는 시간대에 TV도쿄 채널에서 방영되는 것 같은데요. 각화 7분 짜리의 짧은 애니메이션이라고 합니다.

 

◆TV애니메이션 『비하다 일족』 공식 사이트

http://www.tv-tokyo.co.jp/anime/bihada/

 

본래 이 『비하다 일족』은 일본의 러브라보란 회사에서 발매하고 있는 유명 코스메틱 브랜드입니다. 이 브랜드가 유명해진 이유는, 커버에 그려진 1960∼70년대풍의 소녀만화(한국에서라면 ‘순정만화’에 해당하겠죠) 그림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식의 그림이죠.

 

▲왼쪽은 『비하다 일족』의 시트 마스크. 한국에서는 주로 ‘마스크 팩’이라고 하는 듯.

오른쪽은 그에 딸린 부록 만화 단행본. 만화책 표지에 ‘시트 마스크를 하고서

20분 동안에 읽을 수 있는 만화’라고 적혀 있습니다. (2008.09.11/촬영:mirugi)

 

▲『비하다 일족』 시트 마스크에는 사용 설명까지도 소녀만화(순정만화)풍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 내용도 재미있습니다. 왼쪽에서는 피부가 푸석푸석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 ‘A코’가,

『비하다 일족』 시트 마스크를 붙이고 10분만 기다리면 오른쪽에 “오호호호호호∼” 웃고 있는

미녀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2008.09.11/촬영:mirugi)

 

이러니 만화를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모으게 되었고, 결국 저도 사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어로 ‘타테롤’이라고 불리우는, 옆으로 말린 머리 모양의 캐릭터가 나오는 소녀만화라면 일단 무조건 맘에 들기 때문에….;;)

 

 


 

 

『비하다 일족』은 2005년 발매된 이후 2008년 9월 현재 누계 600만장이란 판매 기록을 갖고 있다는군요. 특히 발매 직후인 2005년에 일본의 휴대전화 사이트에 『비하다 일족』 소설이 연재되었는데, 해당 사이트에서만 한정 판매된 시트 마스크 6만 4천장이 하루에 매진되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 여세를 몰아 2007년에 나온 것이, 바로 위 사진의 ‘부록 만화책 포함 시트 마스크’인 것이죠…. 만화책을 부록으로 주는 화장품도 전대미문이거니와, 하물며 그 만화가 TV애니메이션으로까지 만들어진다는 것은 만화의 나라라는 일본에서도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화장품의 부록으로 붙어 있는 만화책이라서, 서점에서는 유통되지 않고 화장품이 판매되는 약국(일본에서는 ‘드럭 스토어’라고 부름)이나 코스메틱 샵을 중심으로 판매되었다고 하네요. 하긴 일본의 보수적인 총판(‘토리츠기’라고 함) 중심의 유통 구조에서는 신규 출판사가 제대로 서점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의외로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오프라인에서는 서점 못지 않게 각 지역마다 세밀하게 소매점을 갖추고 있는 약국을 이용하고, 온라인에서는 최대의 인터넷서점인 아마존 저팬에서 화장품도 다루기 때문에 『비하다 일족』도 검색이 되니까 구매에 문제가 없거든요.

 

 

부록 만화책은 아직 한 권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나름대로 고전 소녀만화의 장르적 패러디도 담고 있는 등 의외로 내용이 꽤 재미있습니다. 내용이 아직 완결되지 않은 것처럼 되어 있는데, 후속권이 나올 예정은 없는 듯 하여 아쉬웠죠. TV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는 내용은, 공식 사이트를 보아하니 현재 방영된 3화까지는 만화책 내용을 토대로 살을 붙인 것 같습니다. 7분짜리로 전12화 분량 밖에 되지 않으니, 과연 추가 에피소드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본래 『비하다 일족』 상품에 붙어 있는 그림의 주인공 ‘비하다 사라’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줄거리는 실로 압권이라는 단 한 마디 밖에 할 수 없군요.;;

 

미(美)의 상징으로 부르주아계에 군림하는 비하다 가문. 이 명문 일가에서 자란 비하다 사라는, 약관 17세에 WBC(월드 비하다 챌린지) 챔피언에 등극했다. 명예로운 이 대회에서 300년간 승리해온 비하다 가문에 새로운 ‘뮤즈’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극치를 달리던 비하다 가문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리기 직전, 어릴 적부터 따르던 쌍둥이 언니 사키가 비하다 가문에 대대로 전해오는 가보 「비하다 7보전」을 빼내어 새롭게 미용업계를 지배하려고 획책하던 유텐지 가문의 젊은 총수 유텐지 류야와 야반도주해버린다.

 

그 이후 매년 WBC의 챔피언 자리는 유텐지 부인이 된 사키의 손에 넘어가고, 미용업계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오던 비하다 콘체른은 그 상징인 WBC 왕관을 잃은 탓에 주가가 대폭락하여 붕괴하고 만다.

 

사키의 배반으로 모든 사업을 차례차례 유텐지 가문에 빼앗기며 몰락의 길을 걷게 된 비하다 가문. 저택도 담보로 잡혀버린 어느 날, ‘유텐지 사키’로서 나타난 언니와 대치하는 사라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가혹한 운명이었다….

 

…이, 이건 대체 무슨 스토리란 말인가.;; 1960∼70년대에 인기가 높았던 일본 소녀만화 스토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내용입니다.;

 

 

또한, 만화판에 등장하는 비하다 사라의 라이벌 캐릭터 ‘마리에’는 실제 일본에서 활동 중인 탤런트 ‘마리에’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군요. 마리에는 캐나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활동 중인 캐나다 국적의 패션 모델 겸 탤런트로,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 CF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비하다 일족, 화장품 업계 최초의 만화 부록 시트 마스크 발매 (2007.11.10/「엘자」)

http://beauty.oricon.co.jp/news/49561/full/?cat_id=keiz

 

 

위 기사에 따르면, 마리에 캐릭터화에 앞서 본인이 직접 “『캔디 캔디』의 이라이자를, 못된 여자지만 너무 좋아해서 이라이자 같은 캐릭터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이라이자스러운 캐릭터로 잘 완성되어 있더군요.;;

 

 


 

 

저는 평소부터 ‘스토리’가 없는 상품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토리란 것이 비단 『비하다 일족』과 같은 만화 형식;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소니 ‘워크맨’이나 애플 ‘아이팟’에도 각기 나름대로의 ‘스토리’가 있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아이팟’이라면 그 특유의 디자인과 UI(유저 인터페이스)에 의한 감각, 제조사인 애플과 CEO 스티브 잡스에 관련된 각종 배경 등이 훌륭하게 ‘아이팟의 스토리’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죠.

 

대부분의 히트 상품에는 그런 식으로 ‘스토리’가 붙게 마련입니다만, 『비하다 일족』처럼 아예 제조사 측에서 스토리를 만들어 붙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스토리’는 CF일 수도 있고 입소문일 수도 있지만 『비하다 일족』처럼 만화나 애니메이션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한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재미있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를 가진 상품이 자주 등장하길 바랍니다.

 

 

아, 물론 지금까지 한국에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사용한 광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언젠가는 먹고 말 거야”라는 문구로 유명한 오리온제과의 히트 과자 『치토스』 같은 것이 좋은 사례겠죠. 하지만 CF로서만이 아니라, 『비하다 일족』과 같이 정말로 제대로 된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갖고 있는 상품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에 나이키에서 축구선수 박지성의 3D애니메이션과 그래픽 노블을 만들어 발표했는데, 바로 그런 사례를 한국 기업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죠….

 

◆나이키 『박지성, BE THE LEGEND』 공식 사이트

http://www.nikelegend.co.kr/

 

 

마지막으로 여담이지만, 저도 애니메이션을 사용한 CF 제작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오리지널 스토리는 아니었고 한국 작품을 사용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2002년에 일본의 TV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와 『플란다스의 개』, 그리고 『요술공주 샐리』의 영상을 사용하여 SK텔레콤의 여성 전용 휴대전화 서비스 「CARA(카라)」 TV 및 지면 광고가 제작되었는데, 그때 제가 『은하철도 999』와 『요술공주 샐리』의 제작사인 일본 토에이 애니메이션, 그리고 『플란다스의 개』 제작사인 닛폰 애니메이션과 한국 측 광고 제작사 사이의 에이전트를 맡아 계약을 추진했던 것이죠.

 

그때 이야기는 자세히 하기엔 너무 기니까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만, 정식으로 일본과 계약을 맺고 일본 애니메이션 영상을 한국 광고에서 사용한 것으로서는 사실상 처음이거나 매우 오랜만의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그 이후로도 2008년 현재까지 더 이상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애니메이션 ‘영상’이 아닌 ‘음악’만을 사용한 사례로, 2004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교보생명의 『캔디 캔디』 주제가 광고가 있습니다.)

 

저로서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사용하여 상품에 ‘스토리’를 갖게 하는 광고가 상당히 효과적일 것이라고 보는데, 아쉽게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광고계에는 별로 없나 봅니다. 앞으로는 그런 시도가 좀 더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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