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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최초의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

mirugi 2004. 2. 24. 18:15

ⓒ도서출판 서화/shot by mirugi (2004.02.24)

벌써 꽤 오랫동안, 요즘 만화에 빠져서 예전 만화를 못 읽게 되고 있다. 예전에는 책 사는 것이 읽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읽은 책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는데……. 특히 「르네상스」는 창간호부터 책장에 주욱 꽂아놓아서, 심심할 때마다 꺼내어 읽었다.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잡지 「르네상스」가 폐간되고 타 잡지가 계속 창간되며 단행본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어도,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훨씬 앞질렀기 때문에 신간을 좀 사도 금방 다 읽어 버려 읽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읽게 되는 것이 결국 「르네상스」였다. (물론 단행본들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지만.)


그렇게 많이 본 「르네상스」였지만, 90년대도 중반을 넘어서 후반으로 접어들게 되면서 조금씩 손에 집지 않게 되었다. 아무래도 산지 10년도 넘도록 읽고 읽고 또 읽었으니 더 이상 읽을 여력이 없어진 것 같았다. 또 점점 한국의 만화시장은 폭발적으로 종수가 증가했다. 일본만화를 읽는 폭도 늘어났다. 책 사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는 점점 멀어졌다.




1979년부터 tv애니메이션에 빠져 일신사판 『캔디 캔디』를 비롯한 일본 소녀만화를 문방구에서 사보기도 했고, 소년만화지에서도 차성진, 김동화, 이진주 만화를 좋아했으며, 『녹색의 기사』를 필두로 한 황미나 만화도 꽤나 좋아하긴 했지만, 결국 나를 지금처럼 한국 순정만화에 깊이 빠지게 한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르네상스」였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1989년 1월 초.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그 날, 어느 서점에서 발견한 「르네상스」 1989년 1월호가 인생을 바꾼 셈이다. 그 즉시 다시 서점으로 돌아가서, 반품하기 직전의 1988년 12월호 (창간 제 2호)를 구입했다. (창간호인 1988년 11월호는 그 후에 정기구독자 특전으로 받을 수 있었다.)


■「르네상스」 1989년 1월호 정가 2800원
- 신일숙 『1999년생』 2회, 김진 『시벨』, 김동화 『바람의 詩』 3회, 김혜린 『테르미도르』 3회, 황선나 『프로덕션 한─날개 잃은 천사』 3회(完), 진아 『조그맣고 조그맣고 조그마한 사랑이야기』 3회, 고상한 『백색일기』 (카툰), 이은혜 『통화중』 1회, 황미나 『엘 세뇨르』 3회, 한승원 『사랑연습』 3회, 강경옥 『라비헴폴리스』 1회, 원수연 『야회복』 1회, 정명재 『작심삼일』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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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윗 작가인 김동화, 한승원과 황미나를 제외하면, 김진만 이전에 「만화왕국」에서 『짝꿍』으로 알고 있었을 뿐 나머지 작가들은 전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 대본소를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만화는 오직 잡지와 서점용 단행본으로만 읽고 있던 내게 대본소 「프린스 문고」 등으로 활약하던 작가들은 생소했던 것이다.

김동화와 황미나는 소년지를 통해서 여러 작품을 읽고 있었다. 또 당시 고려원에서 『영웅문』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김용 무협지와 도서출판 해문의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에 빠져 있던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교보문고에 갔었는데, 무협지와 추리소설, 애니메이션 대백과 시리즈 외에 꼭 살펴보던 코너가 만화책이었다.


사실 예전에 만화책이란 당연히 오직 대본소에서만 읽을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되어 있었다. 어문각의 「클로버문고」가 히트를 치면서부터 만화책을 서점에서도 살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 것 같다. 클로버문고는 교보문고에서는 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동네 문방구나 서점에서 사모았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서점용 단행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리즈로 수백 권이 나오면서 웬만한 동네서점에서도 쉽게 살 수 있게 된 시초는 클로버문고가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클로버문고는 본격적으로 서점용 단행본을 자리잡게 한 계기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1980년대 초반에는 어문각에서 당시 월간 여학생지 「여고시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동화와 이혜순의 작품들을 서점용 단행본으로 내기 시작한다. 김동화 『내 이름은 신디』, 『아카시아』, 그리고 이혜순 『자매의 창』, 『겨울새의 숲』 등의 1986∼87년 경 나온 재판을 그때 교보문고에서 샀다.

그리고 1986년 12월, 새소년 「요요코믹스」가 나오면서 서점용 만화 단행본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후 1987년 8월, 고려가에서 이원복 『먼 나라 이웃 나라』가 나오면서 한국에서도 서점용 만화 단행본이 수십 수백만부가 팔릴 수 있는 기틀이 처음 잡힌 것이다.
요요코믹스는 대부분 동네 서점에서 샀지만, 『먼 나라 이웃 나라』와 1988년 고려가에서 나온 차성진 『칼레아나』 전 3권은 교보문고에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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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한동안 멀리하던 1980년대 중반, 나를 다시 만화책으로 끌고 간 것은 월간지 「만화왕국」이었다.

대부분은 허영만 『미스터 손』 때문에 「만화왕국」을 보았겠지만, 솔직히 나는 김진 『짝꿍』 때문에 「만화왕국」을 보았다. 허영만은 그 옛날 「보물섬」에 연재되던 『제 7 구단』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지만, 이미 이 시점에서 내가 선호하는 작품이 순정만화로 바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운명의 1989년 1월. 서점에서 우연찮게 「르네상스」 1989년 1월호 (당시에는 해당 월 1일에 발행되었음)에 김진의 작품이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입했던 것이다. 그것이 단편 『시벨』이었다.

그 직후 바로 구입한 1988년 12월호에는 단편 『별빛나기』가 실려 있었다. 1988년 12월호에는 그 외에도 오경아 『마지막 겨울』, 이정애 『일요일의 손님』, 이은혜 『happy christmas… kid! kid! kid!』 등, 마음에 드는 단편이 더 있었다.


1988년 12월호, 1989년 1월호에서 보게 된 장편들인 신일숙 『1999년생』, 강경옥 『라비헴 폴리스』, 김혜린 『테르미도르』, 황미나 『엘 세뇨르』도 재미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1989년 2월호도 구입했고, 그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르네상스」를 정기구독하기 시작했다. 정기구독은 1994년 말까지 5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르네상스」는 휴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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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이름 그대로 결국 한국 순정만화에 재흥[再興]을 가져왔다. 어쩌면 실은 '발흥[發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전까지 일본 소녀만화에 많은 컴플렉스를 가져왔던 한국 순정만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진부한 수식어는 빼놓고서, 어쨌거나 「르네상스」는 대단히 '재미있는' 잡지였다. 나로서는 그 한 마디가 최대의 찬사다.


(문중 경칭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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